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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8 유학의 특징
 

2)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유학의 도는 삼강오륜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삼강오륜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모형제를 보게 된다. 그리고 문밖에 나가면 제일 먼저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가지각색의 만남이 이루어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다섯 부류의 사람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이 다섯 부류의 사람들과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가정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삼강오륜의 예가 무너지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유학은 이러한 인간관계의 근본을 어려서부터 잘 가르치고, 본보기를 보여주는 교육이다.

  

 먼저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한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할 부분은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있어서 먼저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선순위가 뒤바뀐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근본이 어느 한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동서 문화가 공존하듯이 군신, 부자, 부부간이 서로 근본으로 삼아야할 때이다. 요즘 10세 미만 아이들의 지성이 부모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마냥 부모만을 따르라고 한다면 무리가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의 선조들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조들의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알게 된다. 오늘날 너무 서구화 되어버린 교육풍토에서 삼강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영재교육의 핵심이 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군위신강은 ‘임금이 신하의 근본이 된다.’는 뜻으로 오늘날에 상하관계, 즉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보아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쉽게 말하면 최종 결재권자와 결재를 받는 자와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니 그러한 원리에 거스르지 말고, 그것을 전제로 삼아서 일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책임 있는 임금은 반드시 함부로 결재하지 못하며, 신하들의 뜻을 물어서 신중하게 결정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게 되면 임금이면서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신하이면서 또한 무책임하게 따르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러한 관계를 확대해보면 버스나 택시에서 운전기사는 운전대를 쥔 근본자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손님들을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모시고가야 할 책임이 있는 자리이다. 또한 음식점에 가면 주인은 바로 근본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을 손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배려 깊은 마음이다. 배려 깊은 마음은 근본을 중심으로 서로 원하는 만큼 마음의 거리를 다가가거나 기다려주는 것이다.


 한편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손님이 바로 근본자리이다. 요즘은 손님이 왕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서구문화의 산물이다. 이제는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동서양이 만나는 문화적 공존시대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 왕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군위신강을 군신상강(君臣相綱)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 즉 임금과 신하는 서로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둘째, 부위자강은 부모는 자녀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본보기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하나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녀교육은 지식이나 말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차체이기 때문에 부모의 올바른 정신과 생활상은 자녀들의 중요한 근본이 된다. 요즘은 자녀 중심으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기위해 기러기아빠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근본이 되는 부자상강(父子相綱)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어느 한쪽에 메이지 말고 서로가 근본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셋째, 부위부강은 남편은 아내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역시 근본이라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어도 유학에서는 이러한 근본을 밝히는 이유는 우주 자연의 이치대로 옮겨놓은 순리이지 억지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구속이 아니다. 다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갈 뿐이다. 부부간에 남편을 근본스로 삼게 되면 반드시 가정이 화목하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고 아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근본이 되려고 하면, 가정은 점차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진실로 능력 있는 아내라면 결코 남편을 무시하거나 근본자리를 빼앗지는 않는다. 그것이 음양의 이치이며 자연의 순리이다.


 또한 남편들은 내가 아니면 가정에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절대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 아내에게 근본자리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 아내 역시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근본자리를 내줄 필요는 없다. 오늘날은 남녀평등사상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는 부부가 평등한 시대이다. 평등하다는 것은 각자가 근본자리를 잃지 마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제는 부위부강을 부부상강(夫婦相綱)으로 바꿔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근본으로 삼길 바란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이성에 관한 문제도 해결되리라 본다.


 근본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임금, 부모, 남편은 중심적인 위치에서 최고 결정권자로써 항상 고민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중요한 근본을 요즘 사람들이 왜 고리타분한 악습으로만 생각하는 것일까? 추측하건데, 이렇게 만든 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의 영향과 서구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제는 우리의 가정문화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무척이나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삼감 오륜이 유교적 산물이며 여성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얽매이게 한 나쁜 제도라고 가르쳐왔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지도자들은 이것을 믿고 말았다. 그래서 삼강의 정신을 비하시켜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 해방이후 근대화 바람이 일어나면서 서구문화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지리적으로만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 역시 정 반대의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동양 사람들은 먼데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손등이 위로가게하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면서 부르지만, 서양 사람들은 손바닥이 위로가게하고 부른다. 동양 사람들은 숫자를 셀 때 엄지손가락부터 세지만, 서양 사람들은 새끼손가락부터 센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동양에서는 “하늘 천, 땅 지”하면서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자연을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 사람을 가르친다. 그러나 서양은 사람을 먼저 가르치고, 하늘과 우주자연은 나중에 가르친다. 따라서 천자문을 배웠던 민족에게 해방이후 갑자기 “영희야, 철수야, 하면서 강아지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정 반대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의식의 혼란을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구 이론이 들어올 때는 적어도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들여왔어야 했다. 만약 민주주의를 들여올 때, 삼권분립을 삼권화합, 또는 삼권통합으로 들여왔다면 아마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서구의 삼권분립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서로 싸우다 볼일 다보는 정치권이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 근본이 무너진 나라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안타까워할 뿐이다. 

        

 다음으로 오륜(五倫)에는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있다. 오륜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으뜸이 되는 것을 밝혀놓은 것이다.


 첫째, 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바르고 착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따라서 임금과 신하는 바르고 착한 일을 같이 하기위해 모인 집단의 지도자들이다. 만약 나쁜 일을 같이하기 위해 모인 집단의 지도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폭력배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도 의리는 있다. 그러나 군신간의 의로움과는 그 유형이 다르다. 그런데도 요즘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같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조직폭력배의 의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군신간의 의로움이 무너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명한 부모라면 이러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이러한 차이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둘째, 부자유친은 ‘부모와 자녀는 친함이 있다.’는 뜻이다. 친하다는 것은 스킨십을 많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녀가 어릴수록 몸으로 스킨십을 많이 해주고 점점 자라면, 정신적인 스킨십을 많이 해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부모자식간에는 천륜이라는 끈이 생겨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 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옛날에 맹자는 “부모가 잘못을 하면 자식이 이를 감추어 주고, 자식이 잘못을 하면 부모가 이를 감추어준다”고 했다. 법치주의로 보면 맞지 않는 이론이지만 부모자식간에는 서로가 감싸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법률에도 ‘가족간에는 은익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는데,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부모와 자식간에 친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부부유별은 ‘부부간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별이 있다는 것은 음양의 이치로써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부가 한 이불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서로 같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 서로 힘들어진다. 자석의 음극과 양극이 같으면 서로를 밀어내게 되어있다. 부부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남편은 아내를 조강지처라고 해서 귀하게 사랑해왔고, 아내는 남편을 귀한 손님 대하듯이 존경해왔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방정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을 지켜가는 지름길이며, 사랑이 유지될 때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정이 화목할 때 비로소 자녀를 영재로 기를 수 있는 가풍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군자의 도를 부부에게서 단서를 찾는다.(중용)”고 했다.  

   

 넷째, 장유유서는 어른과 어린이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질서가 있다는 것은 ‘사회규범을 잘 지킨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가정을 떠나서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계시고, 선배, 친구, 후배가 있게 된다.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동시에 접하면서 질서를 배우게 되는 때이다. 그런데 장유유서가 꼭 나이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어려도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덕이 높은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맹자도 “공식석상에서는 벼슬의 높고 낮음으로 순서를 정하고, 노인정에서는 나이 많은 순으로 차례를 정하지만, 모두가 섞여 있을 때는 덕 높은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다.”라고 했다.


 이러한 질서의식이 지난 100년 전까지만 해도 잘 지켜졌으나, 일제 강점기와 서구문화의 유입이 있으면서 특히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모든 장유유서의 가치기준이 돈이 되어 버렸다. 돈이 많으면 차례가 앞서고, 돈이 많은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물질이 정신을 앞선 사회를 어린아이 사회라고 한다면, 정신이 물질을 앞선 사회를 성인군자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가치판단의 기준을 돈과 권력과 명예로 하면 어린아이 사회이고, 도덕으로 하면 성인군자 사회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춘원 이광수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기를 쓰면서 도산선생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윌슨 대통령이 거리 행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떤 중년 부인이 손수건을 흔들면서 대통령을 향해서 “나의 아들아, 나의 귀엽고, 귀여운 아들아!(My boy, my dear, dear boy!)”라고 눈물을 머금고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얼마 전가까지만 해도 우리는 대통령과 영부인을 국부와 국모라고 불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보통사람이 되더니 머슴 되었다가 이제는 아들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국민은 아들이었다가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국민들도 아직은 아들이다. 즉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부모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산선생의 말처럼 서양에서는 대통령을 아들라고 불렀다고 하니,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라고 보여 진다. 중년부인이 외친 이 소리가 미국을 대표하는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윌슨대통령을 향해 아들이라고 소리쳤다는 기록만큼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 국민은 부모라는 소리가 된다. 내가 보기에 미국도 지금은 대통령과 국민이 다 아들인 것 같다. 이것으로 보면 현재 동서양은 모두 어린아이 사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왕들이 부모가 되어 백성을 자식과 같이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아들만이 남아서 정치를 하고 있다. 또한 백성들도 많이 성숙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아들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대통령이 자식과 같이 여겨왔고, 국민이 부모였으나, 이제는 대통령도 아직 아들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국민마저도 아들처럼 되어버렸다. 참으로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물질문명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제도와 사상이 동서양을 전혀 다른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추측하건데,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 2차대전이라는 엄청난 전쟁을 통해서 부모들이 다 죽고, 소위 소년가장이 되어 부모 없이 아들들끼리 나라를 이끌어왔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도 성인이 되고, 국민도 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동서양이 모두 성인군자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유유서의 가르침이다.

  

 다섯째, 붕우유신은 ‘친구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놀이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어릴 때는 놀이를 통해서 친구를 사귀고, 나이가 들어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언제나 믿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옛날부터 놀이를 통해서 믿음직한 친구를 사귀도록 하는 것은 영재교육의 필수 조건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나, 오성과 한음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붕우유신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예로부터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복은 훌륭한 부모에게 달려있고, 좋은 친구를 만나는 복은 훌륭한 스승에게 달려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따라서 훌륭한 친구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와 스승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로 인해서 우정이 아닌 돈이 친구를 사귀는데 더 중요한 가치기준이 되어 버렸다. 돈이 없으면 친구도 못 사귄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특정단체로 정해지다보니, 생활수준에 따라서 아이들이 가는 곳이 달라진다. 놀이문화가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들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믿음의 형태가 필요한 시기이다.


 어느 날 유학사상의 발달 과정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신용사회를 말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찾아보았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갖추어야할 다섯 가지 덕목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 춘추시대의 혼란기에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다. 그리고 100년이 흘러 맹자는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의(義)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어서 순자는 예(禮)를 강조했으며, 12세기 혼란기에 주자는 가례를 지어 예(禮)를 확립했다. 그리고 15세기 혼란기에 왕양명은 치양지를 통해서 지(知)를 강조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신(信)만이 남았다. 그것이 바로 신용사회인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반드시 신(信)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오륜에 스승과 제자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다. 물론 넓게는 장유유서에 포함되지만 구태여 하나를 더 만든다면 사제유정(師弟有情)이라고 붙이겠다. 즉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정(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승은 제자를 향해 속 깊은 정을 간직해야 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부모와 같은 정을 느껴서 배움을 깊고 넓게 쌓아가야 한다. 오늘날 촌지문제, 학교폭력문제 등으로 점점 스승과 제자사이에 정이 없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 오륜에다 사제유정을 포함시켜 육륜이라 말하면 어떨까?

  

 먼 옛날부터 이 땅의 부모들은 삼강오륜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정신을 그대로 이 땅의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 결과 많은 영재가 태어났고,  마침내 성인군자들이 많은 사회를 이루어 왔다. 이제 그 후손들도 부모로부터 삼강오륜의 영재교육법을 배워서 성인들이 많이 출현하는 성인군자의 나라가 되면, 동방의 등불이 다시켜지는 날이 될 것이고, 또한 찬란한 아침의 나라에서부터 동방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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