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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4 율곡선생이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메세지

성인에 뜻을 세워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학문이 아니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또한 절대로 이상한 다른 물건이 아니다.

그러면 이 학문이란 무엇이냐? 이것은 다만 오륜(五倫)일 뿐이다. 이 오륜을 날마다 행하는 사이에 모두 마땅한 것을 얻어서 행해야 할 것이고, 공연히 마음을 현묘(玄妙)한 곳으로 달려서 무슨 이상한 효과가 나타나기를 넘겨다보지 말 것이다.

어쨌든 이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둡게 마련이다. 그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궁리해서 자기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밝혀야 한다. 그런 뒤에야 학문이나 기술이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되어 매사가 정당해지고 행동도 올바르게 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런 학문이 사람들이 날마다 행동하는 데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貶??이것은 까마득히 높고 멀어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학문을 자기는 하지 못하고 남에게 밀어 맡겨 버리고서 자신은 스스로 이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맨 먼저 뜻부터 세워야 한다. 그리해서 자신도 성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조금이라도 자기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물러서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개 보통사람과 성인을 비교해 보면 그 근본 성품은 한가지요 둘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가진바 기질에는 맑은 것과 흐린 것, 또는 순수한 것과 잡박한 것의 차이는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진실로 몸소 실천해서 자기가 가졌던 물든 옛 습관을 버리고 자기가 타고난 본래의 성품을 회복하고 보면 여기에 터럭만큼도 보태지 않아도 착한 일을 다 구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성인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가?

그런 때문에 맹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성인이 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어찌 이 말이 우리를 속인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운을 내어 일어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성품이란 본래 착해서 옛날과 현재의 차이나, 지혜가 있거나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 성인만이 혼자서 성인이 되고 나는 혼자서 성인이 되지 못하겠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곧 뜻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치 못하고, 또 행실이 착실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뜻을 세우고 아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행실을 착실하게 하는 일들은 모두 나 자신에 있는 것이니 어찌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겠는가? 안연(顔淵)은 ‘순(舜)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란 말이냐? 모든 일을 애써 행하면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도 역시 이렇게 안연이 순임금 되기를 바라던 것처럼 본받아서 행하리라.”

사람은 타고난 용모를 바꾸어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도 업고, 또 타고난 힘이 약한 것을 변해서 강하게도 할 수 없으며, 키가 작은 것을 변해서 크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이미 정해진 분수가 있어서 그것을 고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가지 변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음과 뜻이다. 이 마음과 뜻은 어리석은 것을 변해서 지혜롭게도 할 수 있고, 또한 어진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은 지혜로운 것보다 아름다움이 없으며, 어진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나 혼자 괴롭게 저 어질고 지혜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하늘에서 타고난 본성을 깎아낸단 말인가?

사람마다 이러한 뜻을 마음속에 두고 이것을 견고하게 가져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구나 거의 올바른 사람의 지경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혼자서는 자칭 내가 뜻을 세웠노라 하면서도 이것을 가지고 애써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그대로 우두거니 서서 무슨 효력이 나타나기를 그대로 기다리고만 있다. 이것은 명목만은 뜻을 세웠노라 하지만, 그 실상은 학문을 하려는 정성이 없는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내 뜻의 정성이 정말로 학문에 있다고 하면 어진 사람이 될 것은 정한 이치이고, 또 내가 하고자 하는 올바른 일을 행하고 보면 그 효력이 나타날 것인데 왜 이것을 남에게서 구하고 뒤에 하자고 기다린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뜻을 세우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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