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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4 가례보감(소피아 님)

가례보감(소피아 님)

우리가적 4대 가계도 및 인생이야기

1. 조부모

1) 친가 할아버지 : 손 용 환 할아버지께서는 첫 결혼으로 딸 셋을 두셨다. 그는 40세 되던 해에 다시 결혼 하셨고, 77세에 돌아가셨다.

2) 친가 할머니 : 조 차 례 - 시어머니는 두 번째 부인이다. 시어머니는 7세에 소아마비를 앓으셨다. 그러나 6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아서 다섯 분의 이모들의 도움을 받아 키우셨다. 2005년도에 86세로 돌아가셨다.

3) 외가 할아버지 : 안토니오 히솔래 소피아 (Antonio Hisole Sofia) (1922년 11월 13일 ~ 2003년 12월 18). 아버지는 아직 자식들이 어릴 때 부인을 잃었다. 부모님은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셨다. 첫 번째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형제들은 아버지 고향으로 보내져 조부모님 손에 키워졌다.

4) 외가 할머니 : 알래한드라 부애나패 라빈 (Alejandra Buenafe Labin) 나의 어머니는 1929년에 6월 9일에 태어나셨고, 언니와 한명의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넷이 있었다. 두 여동생은 할머니의 엄마가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가신 후에 죽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두 번째 부인이고, 1957년 7월 21일에 결혼하셨다.

2. 부모

1) 아버지 : 손 재 돈(6제)

2) 어머니 : 루시아 소피아 Lucia Sofia (3제) (Lucia(이름), Sofia(성))

3. 형제자매

1) 남자형제 : 손재선(1제/남), 손재보(2제/남), 손재순(3제/여), 손기운(4제/남)<부인이 일본 사람이다>, 손재안(5제/남), 손재만(7제/남)<부인이 배트남 사람이다.>

2) 여자형제 :

1. Margarita Sofia-Frankel(1제/여) 나의 언니는 유태인 형부와 (David Frankel) 아이 없이 미국에서 살고 있다.

2. Wilfredo Sofia (2제/남). 오빠는 두 명의 아들과 아내와 (Marilyn Espeleta-Sofia) 함께 필리핀에서 살고 있다.

a. Kevin Sofia

b. Kenneth Sofia

우리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난 언니와 오빠들이 있다.

1. Carmen Sofia-Foley(1제/여) 호주남자와 결혼해서 호주에 살고 있다.

2. Marieta Sofia(2제/여) 결혼 하지 않았고 아버지 고향에서 살고 있다.

3. Anita Sofia-de los Reyes (3제/여) 세 명의 딸과 함께 1990년 이후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a. Apryl Marie de los Reyes-Andaya

b. Chloe Ann de los Reyes

c. Trishia Kay de los Reyes-Blanco

4. Jose Sofia (4제/남). 두 명의 딸과 함께 아버지 고향에서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Norma Gancia-Sofia) 2010년에 사망했다.

1. Karmean Sofia

2. Joy Sofia

4. 자녀

1) 딸 - 손은아 (1998-08-12)

2) 아들 - 손정수 (2002-07-09)

▶ 우리 가족의 진품 명품(A4용지 1-2쪽 이내)

1. 가훈 - 우리 가족의 전통은 신의에 기초한다. 마음과 정신에 항상 간직하고 있다. 우리 Son-Sofia 가족은 아이들과 손자들이 서로 사랑을 하는 시민으로 자리를 잡는 새로운 전통을 세우길 바란다.

2. 좌우명 - 내 남편과 나는 인생을 성공하기 위하여 근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인생의 중심을 우린 자신 뿐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우리 인생의 목표를 아이들도 따라주길 바란다. 우리는 되도록 아이들이 이 나라에 짐이 되는 게 아니라 유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미래에 아이들이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드는데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3. 종교, 철학, 사상 등의 정신세계

나는 통일교에 1886년부터 신자이며, 여길 통해서 남편을 만났다. 통일교 신자로서 우리는 인종과 믿음과 관계없이 모두가 형제자매인 것을 믿는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가족화를 이룸으로써 세계평화를 얻을 수 있다.

* 손씨는 밀양 목사공파이고 42대손이다.

* 필리핀에서 우리가정의 근본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근원을 뒷받침할 충분한 기록은 없지만, 우리는 성을 통해서 증조부를 찾아낼 수 있다. 엄마의 결혼 전 성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소피아(Sofia) 가족을 펜에이 섬에 있는 일로일로 시에 근원한다. 라빈(Labin) 어머니의 가족들은 세부 섬에 있는 래이테시에 근원한다.

4. 자랑스러운 이야기

남편과 나는 15년 이상을 함께 살았다. 언어와 문명과 믿음이 다른 속에 살고 있지만 그것들은 남편과 아내로써 사는데 어떤 장애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무관심이나 나쁜 상황으로 인해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 형제들로 인해 다툰 적은 있다. 우리는 긴 상의와 다툼은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말을 정확히 못하는 엄마를 가진 국제적인 가족 속에 있지만 공부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아주 잘 하며, 또한 이해도 잘 한다. 우리는 IMF시기에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을 해결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5. 저서, 예술작품

 

은아는 5학년 때 TV를 보면서 스케치를 했고, 교실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

다. 미술학원에서 배우진 않았다. 내 생각엔 외가 쪽의 재주를 가졌다고 본다.


나는 내 가족에 대해 글을 썼고, 아래 보이는 책 속에 내용이 있다.

Peace Women Magazine.에서 일하는 기자는 나를 인터뷰를 했다.

▶ 인생 역전이야기

1. 우리 가족에게 가장 어려운 시련극복기

남편의 가족들은 전쟁을 치루면서 살았던 옛날 분들이다. 시아버지는 40세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심지어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시어머니와 결혼해서 7명의 자식을 남기고, 77세에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여동생들의 도움으로 살았다. 자식들이 초등학교를 마치는 13세가 돼서야 혼자 키울 수가 있었다. 그 후에 남편을 포함한 형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서 직장을 찾아 서울에 올라갔다. 그들은 공장에 취직을 했고 그곳의 기숙사에 사느라 서로 떨어져 살았다. 막내 동생이 마지막으로 학교를 마쳤을 때 형제들은 어머니를 서울로 모셨고 어머니는 딸과 함께 살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은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해야 했기 때문에 정부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남편은 22개월간의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마칠 수가 없었다. 군대를 마친 후 정부는 집에서 공부한 걸 인정해주는 제도를 없앴으며, 그는 대학을 가기 위해 필요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은 남편이 깊게 후회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대학 갈 기회는 잃었다. 그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미래를 위해 계속 일했다. 그는 28세에 공장에서 일하던 중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그는 40세에 거의 왼쪽 다리전체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조차도 지금까지 그가 일하는 것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그들이 어릴 때 전쟁을 경험했다. 필리핀은 전쟁으로 황폐됐고 가난한 상황을 만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16세에 아홉명의 형제들을 부양하기위해 직장을 찾아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로 갔다. 그는 열 명의 형제들 중 첫 째 아들이었고,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만 했다. 그는 22세에 첫 째 부인과의 사이에 자식 넷을 두었다. 첫 번째 부인이 죽었을 때 네 명의 자식들을 고향에 보내 부모님이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냈다. 2년 후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의 어린 다섯 여동생들이 대학갈 때는 모두 내 부모와 살기 위해 왔다. 나의 부모는 여동생들이 교사가 되기 위하여 들어간 대학을 마칠 때까지 교육비와 용돈을 보내줬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일했다.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를 4년제 대학에 보냈다. 큰 언니는 화학을 전공했고, 오빠는 광고학을 전공했으며,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런 모든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가족들의 삶에 대한 정신이 긍정적이며 부지런 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지하방에서 살림을 시작 했다. 아시아경제가 곤두박질 쳤을 때 였다. 바로 IMF 시기였다. 남편이 직장을 잃었을 때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남편은 세 개의 직장을 구했다. 4시에 신문배달을 7시까지 했다. 남편은 아침을 먹기 위해 집에 왔고, 다시 소방서에 출근하기 위해 8시에 나갔다. 그는 오후 6시에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네 시간을 잤다. 그는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웃들을 위한 경비 일을 했고, 그리고 다시 4시엔 신문배달을 해야만 했다. 나는 큰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이라 그를 도와 돈을 벌 수 없었다.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제왕절개를 했지만 병원에 낼 비용조차 없었다. 병원에서는 남편이 가진 돈만을 받고 나를 집에 가게 해줬다. 남편은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우린 2001년도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 나는 영어 학원 선생이 되어서 돈을 벌며 그를 도왔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단지 4년이 걸렸을 뿐이다. 충분한 저축을 한 후에 우리는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2.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2쪽 이내)

우리는 서울과 수원에서 모두 5년 동안 지하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2001년에 수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햇볕이 들어오는 집을 마련했고, 너무 행복했다. 2002년에는 우리에게 다른 사고가 있었다. 그는 거의 왼쪽 다리를 잃었고, 6개월이나 병원에 있어야 했다. 내가 우리의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이다. 아들이 4개월 됐을 때, 나는 다시 학원에 나갔고, 2시부터 8시까진 시누이가 남편과 함께 있었다. 남편이 회복해서 다시 복직했을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5년에 우린 집을 샀고, 우리 네 식구와 또한 손님들이 가끔씩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2003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가족 모두는 필리핀에 갔다. 2009년에 우리는 가족모임을 하기 위해 다시 필리핀에 갔다.

나는 말한다. 어려움 속에도 행복은 항상 함께 한다고!

난 확신한다. 우리가 어려움을 직면하더라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은 이유가 있어 생기는 것이다. 난 자녀들 역시 삶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는 매번 경험들을 모두 겪어보길 원한다.

2009년 12월 25일에 필리핀에서 찍은 엄마와 가족들의 사진이다.

남편은 13살에 서울에 있넌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 가족들은 70년대에 중산층에 속했다.

▶ 가족박물관, 전시장

1. 가족박물관

사진에 보이는 반지 두 개는 엄마가 내게 주신 것이다. 엄마가 젊었을 때 쓰시던 반지이고 진주와 옥으로 만들어졌다. 목걸이는 내가 3개월 때 세례식에서 받은 것이다. 이 책들은 우리 가족들을 다른 문화에서도 행복하고 근원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화목하게 인도해 주시는 문선명 목사님의 책들이다.

2. 가족전시장(타임캡슐)

우리 차 2011년 모댈 KIA -Soul

IMF시기를 극복한 후 우리가 산 첫 집이다.

2009년에 엄마가 외손 주들에게 선물로 주신 우리 귀여운 애완견이다.
<이름: 하야나>

▶ 소망쪽지, 후손들에게 남기는 편지

1. 가족들이 남기는 소망쪽지

우리 손과 소피아 가족들은 미래에 진정한 사랑의 중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가문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안에서 마음과 인격, 충심으로 더 나은 우리를 만들 다음 세대의 기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돈이나 어떤 물질도 사랑과 인생이 함께하는 풍요함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마음과 몸이 순수함을 지키는 전통을 따라야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래 살아가는 동안은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포용하고 사랑하는 국제적인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

2. 후손들에게 남기는 편지

우리 자손에게, 나는 지구상 여기에 너희들 누군가 태어날 때 보고 싶다. 나는 너희 할아버지가 아들과 딸에게 했던 것처럼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게 그때도 여기에 함께 하길 바란다. 비록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수는 없을 지라도, 우리는 너희 엄마와 아빠가 우리들에게 했듯이 너희들을 키워줄 거라는 강한 바람과 깊은 믿음이 있단다. 우리는 너희와 너희들의 능력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배워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너희가 선(善)한 마음을 열면 우리가 배웠던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거라는 걸 안다. 우리는 너희나 너희부모들에게 드러나는 부유함을 줄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주었다. 그건 진정한 사랑과 지혜, 그리고 좋은 인격이다. 기억하라. 우리 각 개인과 모두는 살아야 할 삶이 있고 우리는 모든 일에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있다는 것을!! 너희 인생의 모든 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면 확실하게 성공 할 것이다. 너희 부모가 한 것처럼 항상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라. 그것이 사는 이유일 것이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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