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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3 지금 나의 의식의 수치는 몇인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이 한 때 세계를 놀라게 한적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향상시켜 주었습니다.

오늘 문득 다시 한 번 책을 보면서 스스로를 각성하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1. 의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인간의 의식 레벨을 수치화 시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의식수준의 모든 영역을 1부터 1000까지의 대수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을 확증하게 해준 수백만 번의 시험을 통해 인간사에 작용하는 힘의 다양한 측면을 실감하게 되었고, 똑 같은 힘이라도 눈에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확연히 다르며 또 그들 힘의 질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치는 첨단 이론물리학이나 혼돈이론의 비선형 동역학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검증되었다. 수치화된 각 레벨들은 의식 자체의 영토 내에 존재하는 강력한 끌개 장(attractor fields)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끌개 장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지배하고, 인간 행동의 광범위한 패턴들을 나타내는 조직화된 에너지로서의 구실을 한다.


 의식수준에 따른 끌개 장의 여러 계층은 모든 시대를 망라한 인간 경험을 총체적으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탐구가 영적성장을 이룩하고 의식의 진화된 차원에 이르는데 보탬이 되고, 나아가서는 깨달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바람직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인간행동의 과학적인 재해석은 개인과 사회문제들의 저변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노출하며, 바로 그와 같은 문제의 노출로 인해 그 해결책 또한 모색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의식혁명의 책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가 함축하는 바는 성현들의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어떤 특정한 환경에 처했을 때 훨씬 성숙된 행동이 나타난다. 그것은 이미 말씀 자체에 의식레벨이 존재하기 때문에 말씀을 생각하는 순간 강한 끌개 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글을 많이 배우고 익히면 그만큼 의식레벨이 높아지며, 문화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



2. 의식지도

신의 관점

세속의 관점

수준

대수의 수치

감정

과정

자아

존재

깨달음

700-1000

언어 이전

순수 의식

항상 존재함

완전한

평화

600

축복

자각

하나

전부 갖춘

기쁨

540

고요함

거룩함

사랑

자비로운

사랑

500

존경

계시

현명함

의미 있는

이성

400

이해

추상

인정 많은

화목한

포용

350

용서

초월

감화 주는

희망에 찬

자발성

310

낙관

의향

능력이 있는

만족한

중용

250

신뢰

해방

용납하는

가능한

용기

200

긍정

힘을 주는

무관심한

요구가 많은

자존심

175

경멸

과장

복수에 찬

적대의

분노

150

미움

공격

부정하는

실망하는

욕망

125

갈망

구속

징벌의

무서운

두려움

100

근심

물러남

경멸의

비극의

슬픔

75

후회

낙담

비난하는

절망의

무기력

50

절망

포기

원한을 품음

사악한

죄의식

30

비난

파괴

멸시하는

비참한

수치심

20

굴욕

제거


3. 인간의 의식수준

 의식세계를 수치화하는 데 있어서 ‘용기’의 수준인 200이 일종의 분기점이 된다. 이 200이라는 수치야말로 끌개가 강하냐 약하냐, 영향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분기점인 것이다. 200이하의 수준은 개인이든 사회이든 파괴적인 삶을 뜻하며, 200 이상의 수준은 잠재력의 건설적인 표현이다.


 1) 에너지 수준 20 : 수치심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을 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이다.


 2) 에너지 수준 30 : 죄의식

 죄의식은 처벌과 농간의 수단으로 우리사회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연민이나 자기 학대, 피해의식에서 생기는 여러 증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3) 에너지 수준 50 : 무기력

 이 수준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정지어진다.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이고, 비애가 인생의 주제로 보인다. 집도 없이 헤매는 사람들과 사회의 낙오자가 이 수준에 속한다.


 4) 에너지 수준 75 : 슬픔

 이 상태는 슬픔, 상실, 낙담의 수준이다. 비탄, 공허,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가 이 수준을 지배한다.


 5) 에너지 수준 100 : 두려움

 이 수준은 세상이 위험해 보이고, 함정과 위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은 독재자가 민중의 통제를 위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고, 불안감의 조성은 시장을 독점하려는 회사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6) 에너지 수준 125 : 욕망

 욕망의 수준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발견된다. 욕망이란 축적이나 탐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욕망이란 언제나 계속되는 에너지 장이기 때문에 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를 채우고 나면 다른 무엇이가를 또 채우고 싶어진다. 백만장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7) 에너지 수준 150 : 분노

 분노는 살인이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에너지 수준 자체는 죽음의 주위에서 맴도는 단계에서 훨씬 벗어난 상태이다. 분노는 파기적일 수도 있고, 건설적일 수도 있다. 분노는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8) 에너지 수준 175 : 자존심

 자존심의 향상은 낮은 의식세계에서 그들이 경험한 모든 고통의 진통제가 되어 준다. 자존심은 분열과 파벌주의를 초래하며, 그래서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9) 에너지 수준 200 : 용기

 용기의 수준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200 이상의 수준에서는 모두가 강한 반응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수준에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하며, 이 단계야말로 탐구, 성취, 인내, 결단의 영역이다. 인류 전체의 의식수준은 오랫동안 190에 머물렀으나 20년 전부터 204의 수치로 괄목할 만한 비약을 보여주고 있음은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10) 에너지 수준 250 : 중용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신뢰를 잃지 않는다. 함께 지내기 쉽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여 근본적인 수용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250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다.


11) 에너지 수준 310 : 자발성

 자발성이란 인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마음이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실로 친절하게 대하고, 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내면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배움에 장벽을 두지 않는다.


12) 에너지 수준 350 : 포용

 이 수준에 이르면 우리 자신이 인생의 모든 경험을 창조하고 원천이 된다는 이해를 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책임감이야 말로 이 단계의 특징으로, 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13) 에너지 수준 400 : 이성

 이성의 단계에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자료들을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어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와 결론 사이의 모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다만 이해와 정보가 성취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14) 에너지 수준 500 : 사랑

 사랑은 신분이나 입장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사랑이란 어떤한 장애물도 있을 수 없기에 ‘너와 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진정한 행복의 단계이며,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500 이상의 수치로 측정된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0.4%만이 이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15) 에너지 수준 540 : 기쁨

 기쁨이란 외부의 어딘가에 근원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매 순간마다 솟구치는 것이다. 성인, 영적 치유자, 그리고 그 제자들의 영역이다. 계속되는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창조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눈뜨게 된다.


16) 에너지 수준 600 : 평화

 이 에너지 장은 초월이나 자아실현, 신 의식 등의 용어로 묘사되는 경험과 깊이 관련된다. 주관과 객관의 차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수준의 수치로 측정되는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 작품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우리들의 의식을 더 높은 세계로 고양시켜 주며, 시간을 뛰어넘어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어 준다.


17) 에너지 수준 700 - 1000 : 깨달음

 이 수준은 영적 완성자의 단계로, 수많은 세대를 통하여 군중들이 추종하고 따르며 영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 단계는 이원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하나’의 수준이다. 의식의 분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며,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간다.


4. 잠재력의 근원

 잠재력(power)은 표면 의식의 힘(force)과 달리 삶 자체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는 것과 항상 관련되어 있다. 잠재력은 정신의 고귀함에 호소하지만, 표면의 힘은 어리석고 우둔함에 호소한다. 잠재력은 정당화 과정이 필요하지 않지만, 표면의 힘은 언제나 합리성과 정당성을 요구한다. 표면의 힘은 부분과 관계가 깊지만, 잠재력은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진정 위대한 사람들은 강력한 끌개가 이끄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감복하는 위대한 힘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 했다. 그들은 그 힘의 근원을 자신이 아닌 좀더 큰 근원으로 돌리곤 했다.


5. 삶의 자세와 잠재력의 패턴

 높고 낮은 에너지 패턴의 구분 능력은 고통스러운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게 되는 우리들의 인식 능력과 분별력에서 나온다. 실패나 고통 같은 아픔은 약한 패턴의 영향에서 나오고, 성공이나 행복, 건강은 강한 끌개 패턴에서 나온다.


 성공적인 문제 해결은 부정적인 것을 공격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보완하는 데에 있다. 알코올 중독의 회복은 중독과 싸우기 보다는 절제와 맑은 정신으로 남아 있겠다는 삶의 자세를 선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오직 평화를 선택함으로써만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500 이상의 의식 수준에서 본다면 죽음조차 환상에 불과하며 삶이란 계속되는 것이다. 오직 신체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한정된 인식 능력만이 계속 되는 삶을 못 볼 뿐이다. 의식이야말로 육체에 생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육체를 초월하여 존재의 또 다른 차원에서도 계속 살아남는 약동하는 에너지인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긍정과 부정의 에너지 패턴”에서 왼쪽의 항목들은 200 이상으로 측정되는 강력하고 긍정적인 에너지 패턴들이고, 오른쪽은 200 이하로 측정되는 약한 에너지 패턴들이다.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 패턴

200이상 수치

200이하 수치

200이상 수치

200이하 수치

가르치는

설득하는

영적인

물질적인

건설적인

파괴적인

용기 있는

만용의

검소한

낭비하는

융통성 있는

경직된

고상한

과시하는

이끌어 가는

강요하는

권위적인

독단적인

인내하는

탐욕스런

깨어있는

고정관념의

인정하는

부정하는

낙관적인

비관적인

자발적인

강제적인

너그러운

각박한

자비로운

동정하는

따뜻한

열광적인

전체적인

부분적인

매력적인

유혹적인

점잖은

건방진

명석한

약삭빠른

조화로운

극단의

민주적인

독재적인

존재하는

소유하는

믿는

고집하는

주는

빼앗아가는

받아들이는

거절하는

즐거운

광적인

변치않는

변덕스러운

진실한

거짓의

본질의

상적인

질서의

혼동의

부드러운

딱딱한

친절한

잔인한

북돋우는

촉구하는

통합하는

분석하는

소중히 하는

보상을 바라는

평등한

우월한

수용하는

움켜쥐는

평화적인

호전적인

신사적인

거친

포용하는

비판하는

애국의

국수주의의

하나의

나누는

열린

비밀의

해방하는

한계를 짓는

영감을 불어넣는

세속적인

허심탄회한

계산적인

영원한

잠시의

허용하는

통제하는


6.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유명한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은 패턴과 상징의 원형을 연구 한 후 ‘집단 무의식’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이 집단 무의식을 강력하고 우주적이고 조직적인 패턴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인간의식의 거대하고도 숨겨진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해주며, 정보의 거대한 창고 이상의 것이다.


 의식의 데이터베이스는 충전된 배터리라기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정전기의 콘덴서와 같다. 해답의 잠재력을 지니지 않는 질문이란 있을 수 없다. 질문과 해답은 같은 패러다임에서 창출된다. 원인과 결과는 순서에 따라 일어나기 보다는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7. 의식의 진화

 개인들의 운동 역학 시험이나 역사적인 분석에 의해 수치 계산을 해보면 사람들은 평생 동안 평균 5점 정도의 의식진화를 이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생 동안 마주치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들은 불과 몇 가지의 교훈만을 배우는 셈이다. 지혜를 얻는 것은 더디고 고통스럽다. 아무리 익숙한 관점이라도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면 서슴없이 버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다. 성장과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이처럼 심각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낮은 의식수준에 묶어 두는 믿음을 변경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 같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성장은 더딜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성장은 억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경향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 모두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항상 주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항상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황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택범위는 대개는 개인의 비전에 의해 한정된다.


 의식향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꺼이 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자발성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가져오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가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우리는 의식수준을 논의하면서 자존심이 갖고 있는 약점의 하나는 부정성에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의 ‘옳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정’의 과정을 밟는다.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인간이 평생 동안 의식수준을 5점 정도밖에 진전시키지 못하는 장애물이다. 의식의 커다란 진전은 ‘내가 안다’는 착각을 버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다. 마음을 관찰하게 되면, 겸손해져서 다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게 된다. 우리가 높은 의식수준으로 올라감에 따라 존재 자체의 기쁨도 성숙한다.


8. 진실의 추구

 진실이란 개인이 보고 느끼는 인식의 수준에서 주관적으로 결정되곤 한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는 비논리적이고 근거 없는 사실들이라도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론적인 증명이나 실제적 표현이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광적인 믿음은 끝없는 분쟁을 초래한다.


 그러면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종교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파된 가르침의 수준은 가장 높은 차원인 1000이었다. 그러나 2세기경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행 수준은 930으로 떨어졌고, 6세기경에는 540으로 하락했다. 11세기 초 십자군 시대에 와서 그 수준은 현재의 498로 되었다. 이슬람교처럼 정치적 안건을 갖는 과격파 원칙주의자들은 125 정도의 낮은 수치에서 측정된다.


2) 불교

 부처의 원래 가르침은 1000에서 측정되었다. 6세기경 가르침의 실행 수준은 900으로 하락했다. 소승불교는 850, 대승불교는 950, 선불교는 600대에서 측정되었다.


3) 힌두교

 크리슈나의 가르침은 1000으로 측정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수준이 떨어져 현대의 힌두교는 850에서 측정되고 있다.


4) 유대교

 아브라함의 가르침은 985에서 측정되었고, 모세시대에 그 진실의 수준은 770이었으며, 이것은 탈무드의 수준이기도 하다. 현대의 유대교는 499에서 측정된다. 구약성경은 475에서 측정된다.


5) 이슬람교

 마호메트의 의식수준은 540이었다. 코란은 570에서 측정된다. 오늘날 호전적인 이슬람 원칙주의자들이 믿는 가르침의 수준은 130에 그친다.


 이상과 같이 세계 주요 종교들의 진실 수준이 하락하는 것을 관찰해보면, 음양의 개념에서 ‘음’에 머무는 종교는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남는 반면, 세상사에 깊이 관여하는‘양’의 종교는 현저한 수준저하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종교에서나 원칙을 고수하는 과격파들, 열성분자들은 항상 200이하의 낮은 수치를 보이며, 그들은 많은 경우 범죄자들의 의식 수준에서 행동하게 된다.


 사이비 종교가 성행하는 이유는 진실과 허위를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이하로 측정된다면 사이비종교로 볼 수 있다. 확실한 통찰력 없는 진실의 왜곡은 위에서 말한 세계종교들의 하락을 초래했다. 500이하의 수준에서 측정되는 종교는 사랑에 대해 설교할 수는 있지만 실행은 불가능해진다.


 지구상 인구의 15%가 분기점인 200 이상의 의식수준에 속하지만, 15%의 집단적 힘은 전인구 85%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킨다.


 7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000만 명을 상쇄한다.

 6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1,000만 명을 상쇄한다.

 5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한다.

 4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한다.

 3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한다.

 700의 12명은 한 분의 아바타르(몸을 입은 영적 스승)와 같다.

 (현재 지구에는 70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12명 존재한다.


 이러한 상쇄 작용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부정적 에너지의 혼란으로부터 이미 자멸했을 것이다.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사랑스러운 생각은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각자가 그의 생활에서 진실을 추구하게 되면,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고 또 더 높은 의식 수준의 발판이 된다. 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포용(350)의 수준에 도달하며, 이는 인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자신과 남들의 결점들을 알 때, 용서가 나타나며 자비심이 따라오게 된다. 자비야말로 은총으로 향하는 관문이며,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원천이 된다.


9. 앞으로 나아갈 길

 의식수준의 향상은 개인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더구나 이 선물은 파도효과처럼 그 출처로 돌아오게 된다. 좋든 싫든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은 명백하다. 인간의 의식수준이 마침내 200 이상이 된 오늘날 우리는 인간문화의 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대전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앎과 행동에 훨씬 진지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운동 역학 시험 방법



 과학적인 방법은 반복이 가능해야 한다. 일관된 결과가 누구나 나타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운동역학 시험방법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험은 어느 곳, 어떤 사람들에게 하더라도 늘 같은 결과를 나타낸다.



사례 1)

 아돌프 히틀러를 상상하는 것은 사람들을 약하게 만들며, 이것은 피험자들이 히틀러를 전혀 알지 못한다든가 그를 국가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약한 반응을 보인다.


사례 2)

 인공감미료, 살충제, 혹은 봉투에 감추어진 히틀러 사진 등은 피험자를 약화시킨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몸에 좋은 영양제, 혹은 숨겨진 링컨 사진 등은 근육을 강화시킨다.


사례 3)

 넬슨 만델라를 상상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강화시킨다. 그를 역겨워 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강한 반응을 보인다. 바흐의 음악은 피험자가 좋아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헤비메탈 음악은 피험자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약한 반응을 보인다.



 이상과 같은 사례들의 시험 결과는 피험자가 대상이 되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나 거기에 대한 견해, 믿음, 혹은 그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든 아무상관이 없이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의 확실성은 지난 20년간 수천 명의 임상가들이 그들의 연구와 임상을 통해 보장하는 바이다. 사실 종래의 의학 검사보다 더 뚜렷한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한 가지 사례를 든다면, 심장이 약한 사람들도 심전도에서는 가끔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운동역학 시험에서는 예외 없이 약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의식 수준 진단 사례

 

대도시의 깨끗하고 화려한 동네에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이

혼자서 호화저택의 모퉁이에 기대어 서 있다.  

당신은 이 노인이 어떻게 보이는가?

 1.  20(수치심): 더럽고 구역질나며 창피한 존재로 생각한다.

 2.  30(죄의식): 그의 상황을 비난한다. 구걸하기 위한 파렴치한이다.

 3.  50(절  망):  그를 자포자기 상태로 본다.

 4.  75(슬  픔): 비극적이고 친구하나 없는 고독한 사람으로 본다.

 5. 100(두려움): 위협적인 존재, 혹은 사회악으로 보고 경찰을 불러야                   겠다고 생각한다.

 6. 125(욕  망): 그를 골칫거리고 파악한다.

 7. 175(자만심):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으로 본다.

 8. 200(용  기): 근처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없는지 알아볼                   생각이 들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일자리와 거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9. 250(중  용): 노인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살                   고 남도 살게 하자는 생각이 든다.

10. 310(자발성): 용기를 북돋아 주고, 지역 봉사단체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11. 350(포  용): 우리가 이해 못하는 이유 때문에 그가 지금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12. 400(이  성): 최근 경제와 사회모순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13. 500(사  랑): 노인이 친근하고 신경을 써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통속적인 사회범주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14. 540(기  쁨): 무소유에서 오는 평정과 지혜의 얼굴을 가진 사람

                으로 보게 된다.

15. 600(평  화): 곧 자신의 잠시 동안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의식의 수치는 몇이십니까?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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