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우리는 사생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노벨의 경우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죽음을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얼마전 몸이 몹시 아프고 나니, 문득 정말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삶에 연연해 하면서 죽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나름데로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성현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것은 얼마전 유명 연예들이 선택했던 자살과는 다릅니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나 이제 간다."하면서 웃으면서 가신 분들도 있고,

 

스스로 곡기(먹는것)를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 이야기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몸은 영혼의 껍데기에 불과하니 옷한벌 갈아입듯이

 

미련없이 다음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려면 지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요?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석가모니 역시 춘다가 준 독버섯 요리를 스스로 먹고, 갈때가 되었다고 죽어갔습니다.

 

저는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게 된 이유를 보면서 성현들의 죽음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떳떳한하고 당당한 죽음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노벨상이 만들어진 이유

 

노년기의 ‘노벨’이
어느 날 신문을 펼쳐들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간신문의 일면에 ‘알드레드 노벨이 사망하다’ 라고 쓴
큰 기사가 나와 있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기사의 내용인즉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나마이트의 왕이 죽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보도는 불란서의 한 기자가 동명이인의 죽음을
잘못 알고 보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로
자신의 일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거대한 재산을 바쳐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노벨상’을 마련하였습니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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