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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7 100일간의 순례 2. 집을 떠나 정착하기까지

100일간의 순례는 처음부터 기획된 순례가 아니라 부득이하게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취지에서 밝힌바가 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떠난 것과 예수께서 광야로 떠났던 일을 생각하면서

그냥 길을 나선 것이다. 우선은 순례보다는 먹고 잠잘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집을 떠난 이후로 나는 무작정 내가 거처할 곳으로 서원이나 향교를 찾았다.

나는 공자님께 당돌하게도 이렇게 항의아닌 항의를 했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향교나 서원에서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면

나는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한평생 불제자로 살겠습니다."

그런 각오로 길을 나선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생각해두었던 전남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은

차비가 없어서 갈 수가 없었고, 전주에서 가까운 광주향교를 찾아갔다.

집을 나올때 3만 5천원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야만 했다.

 

이번에 나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누구에게도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

그곳에서 월봉서원 원장님을 만났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고,

다행이 광주향교 유도회 김종회 총무국장을 만나서 나주향교를 소개받게 되었다.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나주향교를 찾아갔다.

임호순 전교님과 임재택 사무국장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니,

여러가지 환경적으로 열악했지만 그래도 있을거면 있으라고 해서

무조건 있겠다고 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전교님께서 뜻밖에도 1월 28일 이후에(설날 지나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갈곳도 없고, 차비도 없는데 1주일 후에 오라고 하니 돌연 막막했다.

나주향교까지 오느라 2만원을 사용했으니 이제 만오천원으로 1주일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 1주일 후에는 있을 곳이 정해지니 믿음을 가지고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청년유도회 김득환 선생이 떠올랐다.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저녁 8시쯤 광주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광주로 와서 김득환 선생과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서원에서 다양한 수련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책을 쓰기 위해서 머물곳을 찾는다는 이야기와

2010 한국청소년대축제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뜻이 통하는 동지를 만난 것이 두번째 기적이었다.

 

그리고 김선생이 관리하는 서원을 한번 가보겠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서원이름이 "군자서원"인데, 최근에 증축을 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남 강진에 있다며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는 길에 영암 월출산에 있는 왕인학당을 들려보라고 소개해주었다.

거기에 선비에 대한 예우라면서 여비로 5만원을 주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마도 물에빠진 사람에게 짚푸라기와 같은 희망이었다.

 

나에게 잠잘 곳까지 마련해주고 김득환 선생은 떠났고

나는 아침 일찍 영암월출산에 있는 왕인학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죽 최기욱선생님을 만났다.

왕인학당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준 백제의 왕인박사를

기념해서 만들어 놓은 영암의 대표적인 관광단지 였다.

그곳에서도 역시 나그네가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책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가 있는지 요청했더니

과거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어린이 교육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내심 기뻐 춤을 추었다. 비로 이거구나!

내가 찾는 내용이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어린이 영재교육법을

찾아내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잠시 후에 강진에서 나를 데리러 김득환 선생 동생이 찾아왔고,

나는 그 차를 타고 군자서원으로 갔다.

눈이 많이 와서 무척 길이 미끄럽고, 위험한데도 불평없이 깎뜻하게 나를

귀빈대우 해주니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것이 전해내려오는 선비들에대한 예우라는 것인가? 나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하루밤을 군자서원에서 자고, 다시 왕인학당으로 왔다.

우죽선생께서 며칠 더 묵어가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를 묵고나니, 설날을 앞두고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곳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극구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광주행 버스를 탔다.

 

우죽선생님께서 차표를 끊어주시고, 여비까지 3만원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되 되는가?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일련의 호의에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역시 선비에대한 예우라고 하면서 건네시는 호의에 가슴 깊이에서 감동과 감격과 무한한 사랑의 힘을 느꼈다.

 

나는 처음 출발할 때 향교나 서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머리를 깎겠다는 다짐을 시험해보고싶어졌다.

그래서 광주로 와서 아침일찍 순천 송광사를 찾아갔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승보사찰로써 가장 행사생활이 어렵다고 소문난 곳이다.

그동안 게으르고 나태한 나를 단련시킬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만약 나를 받아준다면 나의 몸을 먼저 단련시킨다음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지금 승려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 태하스님 생각이 많이 났다.

송광사에 도착해서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옛날에 낙산사 홍련암에서 만났던 현묵스님 생각이 났다.

그 스님이 송광사에 계시다고 했으니 혹시 모르겠다 싶어 종무소에 갔서 물어보니,

지금 선원장을 하고 계시다며 나를 그리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6년만에 현묵스님을 만났다.

 

예전에 나에게 법구경 태이프를 선물해주신 이야기며

"파도소리가 곧 법문이지"하고 해주신 이야기며,

지금은 가방하나 메고 집을 나와서 출가의 뜻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현묵스님은 출가의 뜻이 있다면

이곳은 군대로치면 논산훈련소와 같은 곳이라 나에게 잘 맞지 않으니

장교출신에다 뜻이 있는 분이니 그에 맞는 곳을 찾아서 출가하는 것이 좋겠다며

자기가 소개를 해줄테니 지리산 하동에 있는 "칠불사"를 찾아가라고 권하는 것이다.

나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찾아서 왔으니 이곳에 있으면서 결정하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지금 당장 떠나라고 하면서, 그자리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나를 지리산 칠불사로 보냈다.

택시비를 주면서 칠불사 통광주지스님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출가를 해야하는가?

이렇게되면 안할 수도 없지않는가?

2시간 정도 지나 칠불사에 도착해서 통광주지스님을 만났다.

 

이곳까지 오게된 배경을 설명하고 나니 어떻게 할건지를 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가만히 있다가 마음가는데로 이끌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3일정도 기도하고서 정하라는 것이다.

 

원주스님에게 방을 내어주라고 해서 나는 원주스님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졌다.

방을 정하고 경내를 둘러보는데, 이곳은 1세기경 가락국 김수로왕의 7명의 아들이

이곳에 와서 2년만에 성불했다고 해서 칠불사가 되었으며,

한번 불을 때면 1주일 이상 따뚯하다는 "아자방"으로 유명한 절이었다.

밤이 되니 별들이 너무도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눈에 아른거렸다.

별만 보면 내것이라고 우기던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지금 이곳에 함께 있었다면 너무도 좋아했을텐데,

너무도 그립고, 보고싶고, 미안하고, 고맙고, 슬픔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금 나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를 생각하며 문득 시를 한편 지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저별들에게 묻는다.

님그리워 보고파서 다시만나는 날 

너희 그대로 거기에 있어주려느냐?

 

서럽게 얼어붙은 푸른가슴에 깊이담아 두었다가

사랑하는 님 만나거든 나 그때 그리워했노라고 말해주겠는냐?

두어라. 명천성이 이미 밝으니

한번 가슴에 새겨진 별들의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으리라.   

 

밤을 꼬박새우고 새벽예불에 참석하고, 아침을 먹고 나니

피곤이 밀려와서 잠깐 잠을 잤다.

간밤에 그리워했던 아내의 꿈을 꾸었다.

내손을 꼭 잡아주는 꿈을 꾸고 나니, 조금은 힘들겠지만 내 손을 꼭 잡아준 것에 대해 안심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있었는데, 아무레도 마음이 불편해서 저녁예불을 마치고

주지스님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할 일들과 처해진 상황을 숨김없이 말슴드렸다.

그리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가르침을 달라고 했더니,

지금 가지고 있는 뜻도 좋은 것이니 출가를 하지 말고 뜻을 펼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출가를 하라고 하시면 하겠노라고 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여비를 주시면서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라고 하신다.

나는 출가는 못했지만 속가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그렇게 속가제자가 된 나는 다음날 아침에 떠날차비를 하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지해"라는 법명을 주시면서 "지혜의 바다를 이루라"는 뜻으로 지의셨다고 하신다.

하직인사를 하고 하산을 해서 나주향교에 도착하니 설날이 이틀이나 지났다.

이렇게 나의 나주향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에 계속)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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