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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6 나의 성(性)교육 강의

 기업체, 공무원, 학교 중심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지금부터 “성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칠판에 ‘성(性)’자를 크게 씁니다. 그러면 다들 ‘우-’하며 잔뜩 기대를 합니다. 잠시 후에 ‘리학(理學)’을 옆에다 붙이면, 또 다들 ‘에-’ 하며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다시 위에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쓰면 불교의 용어가 됩니다. 그리고 왼쪽에다 ‘영(靈)’를 쓰면 영성이라는 기독교의 용어가 됩니다. 다시 밑에다 ‘명정(命精)’을 쓰면 성명정이라는 도교의 용어가 됩다. 이제는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 ‘성(性)’자에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견성성불

(見性成佛)

 

영(靈)

성(性)

 리학(理學)

 

명정(命精)

 


 성(性)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 바로 성리학의 핵심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성을 보면 곧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性)’은 무엇일까?


 유교의 본질인 ‘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언어 속에 진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따라서 ‘성(性)’자에다가 다른 말을 붙여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성품, 성격, 성질, 성능, 성향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됩니다.


 대부분 강의장에는 물과 컵을 준비해둡니다. 그래서 컵을 가지고 성을 설명하면 쉽게 받아들입니다. 먼저 컵의 성품, 성격, 성질, 성능, 성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첫째, 우리가 품(品)이라는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크고 작은 컵의 성품이 있습니다. 

 둘째, 격(格)이란 높고 낮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격이 높은 컵이 있는가 하면, 격이 낮은 컵이 있습니다. 

 셋째, 질(質)이란 부드럽고 딱딱한 것을 말합니다. 딱딱한 컵도 있고, 부드러운 컵이 있습니다.
 
 넷째, 능(能)이란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단단한 컵이 있고, 약한 컵이 있습니다. 

 다섯째, 향(向)이란 쓰이는 용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물을 담는 물컵이 있는가 하면, 맥주를 담는 맥주 컵이 있으니 컵의 성향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는 중요한 것 하나는, ‘성’자에 ‘품,격,질,능,향’자를 붙이면 모두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의 대상이라는 것은 선악으로 대별되기도 합니다. 즉 좋고 나쁜 것이 모두 비교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지 못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틀리다고 비판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품, 성격, 성질, 성능, 성향이라는 단어에서 품, 격, 질, 능, 향자를 빼보면 남는 것은 ‘성(性)’자만 남습니다. 즉 홀로 남은 ‘성’에는 비교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성은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선(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는 컵의 본성을 “담는 것”이라 규정지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컵이든 공통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비교의 대상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최초로 컵을 만들 때 무언가를 담기위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고 무어라 이름 지을까? 고민하다가 “컵”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성에 따라 물건이 만들어지고, 물건이 만들어진 후에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들의 성을 찾아보게 합니다. 설탕의 성은 ‘달다.’ 소금의 성은 ‘짜다.’ 등등...  이쯤 되면 묻는 데로 답을 하게 됩니다. 이쯤되면 모두 견성성불하게 되는 경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본성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이름이 있고, 사람이라는 형상이 있는데,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요? 사람에게도 ‘성’자에다 ‘품,격,질,능,향,성’을 붙이면, 무수히 많은 비교의 대상이 나오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갈등과 전쟁이 있어왔는지도 모릅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바로 순수한 선(善)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선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착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본성을 진선진미(盡善盡美)로 설명합니다. 즉 ‘참으로 착하고,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 참으로 착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쪽을 선택해서 살아간다면 누구나 좋아하고,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난 경지, 비교의 대상에서 벗어난 경지, 바로 성의 이치를 그대로 실천하는 성인군자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참된 성(性)입니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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