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1.12 내마음을 깨운 작은 기적이야기
 세상이 변하여 쉽게 과거의 경험담도 공유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작은 기적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제 블로거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 마음을 깨운 작은 기적

 지금으로부터 5년전 해안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해안을 지키는 소대로, 오전에는 잠을 자고 밤이면 경계근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취침점호를 마치고 한 시간쯤 되었을까? 상황병이 급히 나를 깨우는 것이다. 나는 아침 지휘보고를 한 다음 막 잠을 자려는 순간이었다.


 내용인즉슨 수녀님 두 분이 위병소에서 소대장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잠을 뒤로하고 다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갔다. 사정을 들어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녀님들이 타고 오신 미니버스가 백사장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처해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소대장에게 부탁하면 빼줄 거라고 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니 빼주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근무를 마치고 이제 막 잠든 병사들을 깨울 수도 없는, 참으로 난처한 노릇이었다. 아무리 소대장이라고 해도 긴급상황이 아닌 이상 병사들의 취침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병사들이 막 잠이 들어 깨울 수 없으니, 오후에 기상해서 꺼내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정중히 이야기를 하면서 난색을 표명했다. 그때 수녀님들은 마지막 히든카드를 던지고 말았다. 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이 정신박약아들이라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당장 차를 빼주기로 결정했다.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린 뒤에, 상황병에게 근무교대자 4명과 취사병, 순찰자, 그리고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는 병사들을 위주로 조심스럽게 깨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독실한 신자였던 병사가 피곤하다면서 도로 잠을 자는가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서 옷을 입는 병사도 있었고, 평소에는 신앙심을 표시하지 않던 병사가, 옆 동료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사정을 듣고서 일어나는 병사도 있었다.

 진실로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 나의 처지를 살피지 아니하고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희생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의 생활표상이 아닌가 하는 가르침이 짧은 순간에 깊이 다가오는 체험을 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남이 어려울 때 나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한 예로 전철을 탈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일이지만, 내가 몹시 피곤할 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인가? 피곤하니까 그냥 앉아 있어야 할 것인가?’의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진실로 희생정신이 있는 사람은 피곤하지 않을 때 양보하는 사람보다 피곤하지만 양보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훨씬 더 값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에 의하면 1시간을 서서 가는데 처음부터 서서 갈 때보다 양보하고 서서 갈 때가 훨씬 덜 힘들다.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10명의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막 위병소를 나가려고 할 때 소위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바로 포차라고 불리는 군용트럭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군용트럭은 힘이 있어, 미니버스 정도는 금방 꺼낼 수 있음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우리 부대는 해안에 파견된 독립부대라서 부식을 매일 같이 실어다 먹는다. 그런데 그 부식을 병사들이 기상을 해야 옮겨 나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병사들이 기상하는 오후에 왔는데, 오늘은 오전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지휘보고 할 때도 아무런 지시상황이 없었는데, 지금 상황을 당하여 들어오니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인사계에게 사정을 물어보니, “상부에서 오전 중에 보급창고를 정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부득이 아침에 부식을 나르게 되었노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간단히 상황설명을 하고 백사장으로 갔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미니버스가 아니라 중형버스가 백사장 중간쯤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10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인원이었던 것이다. 전에도 우리는 종종 차를 빼주었는데, 자가용은 4~5명, 봉고는 7~8명이면 가능했기에 미니버스는 10명 정도면 되겠지 했던 나의 판단을 무색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포차가 때맞추어 와줘서 별 힘을 들이지 않고 꺼낼 수 있었다. 포차는 4륜 구동이라 백사장에서도 문제없이 달릴 수 있는 트럭이다.


 그때 수녀님들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나 역시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아마 거기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러한데서 살맛을 느끼는가보다. 누가 하늘에 절대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 다 준비를 해두고 계신 것을! 사람들이 진실 됨만 보여준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나는 물론 10명의 병사들은 그날 하루 종일 잠들지 못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의 잠을 깨우고 있다.

 

Posted by 박평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