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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9 가례보감(박가비니 님)

2011년 서울특별시 다문화가정 지원 특화사업

스토리텔링이 있는 선비문화체험

가 례 보 감

<작성자 : 박가비니 님>

주관:

한국정신문화공동체

후원:

서 울 특 별 시

▶ 우리가족 4대 가계도 및 인생이야기

본관

본관

밀양 박씨

시라파타나피팓

태국 (화교)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박기홍

강병회

무자이

카니타

남편의 형제

남편

본인

아내의 형제

1.박수일

2.박수희

3.박수열

4.박수정

박수일

박가비니

1.박가비니

2.트리차다

3.헤마삭

4.종자르은

조카

자녀

조카

1.이소현

2.이태현

3.박시은

4.박시우

5.최서현

6.최재원

1.박한서

2.박한진

1.파티마

2.필릭

3.승준

1)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할아버지께서 중국에서 배를 타고 태국까지 오셨습니다. 중국은 공산주의 나라 때문에 살기 어려워서 할아버지는 친척과 함께 태국에 오셔서 아무도 없는 밑바닥 인생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가난하게 사셨고, 할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께서는 혼자서 7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2) 우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

우리 아버지는 아주 잘 생기시고 머리가 좋고 중국말을 아주 잘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중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동네 젊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아마 제가 아버지를 닮아서 선생님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때 공산주의 때문에 태국에서 법적으로 중국어를 못 가르치는데 몰래 가르치고 어떤 때는 경찰서 오시면 책을 숨기고 다 도망간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중국 노래를 들었습니다. 제가 중국말 잘 모르지만 그 중국 음악이 나오면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돼지도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막내 삼촌이 5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7형제 중에 4번째이셨던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고무나무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주 부지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재산을 없고 자전거 하나 밖에 없어서 노력 끝에 저희 외할아버지를 설득해서 어머니와 어렵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께서 항상 부지런함과 열심히 일을 해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저희 4형제를 키우셨습니다. 평생 아끼면서 돈을 모아 부유하게 되면서 저희들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습니다. 2009년 처음으로 발을 수술하면서 안타깝게도 피부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계속 치료해왔지만 결국 2011년 8월 4일 날에 6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3)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똑똑하게 공부를 잘 했습니다. 반장도 여러 번해 해봤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학생시절을 아주 잘 보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제가 피부가 하얗고 중국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맏딸이라서 부모님의 일을 많이 도왔습니다. 항상 성실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저희 가족에서는 제가 첫 손녀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공부 잘 해서 선물을 받고 있는 사진>

<초등학생시절에 춤을 추는 모습>

4) 남편과의 만남

대학시절에 제가 통일교의 원리를 듣고 통일교인 되어 1998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평생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아야합니다.”는 말을 듣고 국제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사진을 보내고 문선명 총재님께서 맺어주신 제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1999년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1999년 결혼사진>

5) 남편이야기

남편의 성함은 박수일이고, 2남 2년 중 맏아들입니다. 우리 남편은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부모처럼 농사일을 하기 싫어서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기도 하고 신문을 배달하기도 하면서 6년 동안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일본어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합니다. 지금도 항상 라디오 들으면서 공부합니다. 아이한테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SKY대학교 가라고 매일 매일 공부를 시킵니다. 특히 한자 공부와 수학공부는 필수 그리고 축구 운동을 보내고 시간이 있으면 대학교도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주고 그랬습니다. 우리 남편 정말 저를 많이 사랑하고 착하고 부지런합니다. 철도공사에 일하면서 돈도 잘 벌고 성실하고 정말 좋은 남편입니다.

6) 자녀들

아들이 둘이 있는데 박한서, 박한진입니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고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한참 개구쟁입니다. 귀염둥이들로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 우리 가족의 진품 명품

1. 가훈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2. 좌우명

참 사랑과 참 가정을 만들어 간다.

3. 사진

<저희 가족이 시어머님을 모시고 태국에 관광 갔던 사진>

3. 종교

원래 저희 가족은 불교입니다. 태국에서는 94%가 불교입니다. 불교나라에서 태어나 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 때 여동생이 저를 전도해서 통일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 존재를 알았고 그리고 통일교에 있는 원리강론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상과 영계 부분을 알게 되어 정말 내가 어디에서도 못 들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4.자랑스러운 이야기

2009년 서울특별시에서 뽑힌 이중언어강사로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졸업하고 2009년 9월부터 2011년 현제까지 초등학교에 다문화아이와 다문화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태국어를 가르치고 태국문화도 가르칩니다. 또한 학원에서 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에 있는 태국인들에게 한글도 가르치며 양쪽 언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외국대학교에 가서 대학생들에게 태국어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정말 한국에 와서 이렇게 한국말을 배우고 직업까지 가질 수 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서울교육대학교 이중언어강사 졸업사진>

5.저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전래동화책을 제작했습니다. 태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에 있는 태국 어머니를 위해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태국 문화와 풍경을 소개한 전래동화속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내용들을 어머니가 아이한테 직접 전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 인생 역전이야기

1. 통일교를 알게 된 이야기

대학시절에 동생한테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교육을 받고 인생의 목표를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달았고 대학교에 있는 남자친구를 포기하고 통일교에 있는 축복결혼을 선택하고 문선명 총재님께서 사진으로 저와 남편을 맺어 주셔서 결혼하게 되었고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이 제 인생의 역전이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용감하게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생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2. 한국에 온 이야기

저는 1999년 2월 4일 날 한국시간으로 밤 11시에 비행기가 도착을 했습니다. 생각도 못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홍공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한국에 도착해보니 제 짐이 같이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시간 동안 기다렸고 공항 문이 닫히는 시간이 다 되어서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저를 마중 온 사람들도 다 가고 돈도 없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탔기 때문에 중간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내일 다시 와서 가방을 찾아 가라는 공항관계자의 말을 듣고서 저는 공항에서 자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 봤더니 한국에서는 공항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문을 닫지 않습니다. 2월 달의 밤 12시 쯤 날씨는 얼마나 추웠는지 모릅니다. 태국과 같이 더운 나라에서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그때 저는 얇은 옷차림으로 왔습니다. 내복 잠바 다 가방 속에 있어서 짐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그냥 공항 밖으로 나왔더니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택시를 잡고 호텔에 가려고 택시를 잡아서 기사님한테 영어할 줄 아십니까? 라고 물었는데 한 5번 정도 묻고서야 마지막에 “Yes"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택시 앞자리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이렇게 늦은 밤에 혼자서 택시 타는 것도 처음이고 더구나 외국이라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정말 죽었다 다시 살아온 것 같습니다. 혼자 호텔에서 잠을 자려는데 잠이 오지 않고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때 어떻게 그 시간들이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 가족의 소망과 후손들에게 남기는 편지

제가 대학교 시절에 통일교를 알게 되었고 문선명 총재님을 메시아로 믿고 국제결혼을 선택하면서 평생 통일교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자녀들도 통일교를 믿고, 3대까지 계속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건강하고, 형제들 간에 우애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통일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남을 위해살고 항상 긍정적 생각과 서로 돕고 살아갈 것이며 행복하게 참 사랑으로 참 가정을 이루기 바랍니다.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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