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두번째라 조금은 여유가 있다.

갑자기 전화가 울리더니, 아이가 아파서 참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한가정이 함께 하지 못했다.

시간이 되니,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모여들었다.

어쩜 그렇게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먼저 함양에 도착하니 정경상 성균관유도회 함양지부회장님과 정문상 교장선생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상림유원지를 돌아보았다.

마침 함양 산산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라 관광객으로 붐볐다.

그리고 날시가 무더워서 행여나 힘들어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다.

고운 최치원선생께서 인공림을 조성해서 물길을 돌려 비옥한 함양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상림 숲에 들어서니 과연 시원하고, 좋았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래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날시가 점점 더워지더니, 거의 찜통을 방불케 했다.

2살, 3살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의 엄마, 아빠가 너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모의 깊은 사랑을 느끼기도 했다.



함양 일두 정여창 선생은 성균관 문묘에 동국 18현으로 배향된 인물이다.

그만큼 학덕이 겸비된 훌륭한 분이라는 검증을 받은 분이시다.

그 분의 종택을 방문하니 그분의 정신과 채취가 느껴졌다.

다문화 가정들도 사진을 직고, 이야기를 듣고 신이 났다.

더위는 어디로 갔는지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종택을 지나 일두선생님의 후학들이 선생님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신

남계서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성인식을 거행했다.



모두가 진진하면서도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의식에 임했다.

그리고 의식이 끝난 다음의 소감은 항상 그러하듯이 진진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개별적으로 유도회 회장님과 정문상 교장선생님께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두 분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산청 덕천서원으로 향했다.

덕천서원에 가는데, 네비게이션이 옛날길을 지시하는 바람에 지리산을 넘어서 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한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그덕분에 지리산의 좋은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1시간을 늦게 도착하다보니, 덕천서원 조택환 내임께서 기다리다가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기다리게 되었다.

날시는 더운데, 덕천서원 뜰앞에 서 있으니, 땀이 흘렀다.

일행들은 신기한지 벌써부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다.

한편 미안하고, 한편 고마웠다.

잠시 후 내임과 조종명 원장님께서 오셨다.

일단 방배정을 마치고, 분향례를 했다.

처음으로 이곳에 왔으니, 어른을 찾아뵙고 문안인사를 드리는 의식이 분향례이다.

 검은색 제례복을 입고, 남명선생님을 직접 뵙는 기분으로 분향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로 갔다.



저녁식사가 끝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리산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이 천지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천둥번개가 하늘에 수를 놓듯이 했다.

한 아이는 하늘이 깨지는 소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천둥번개가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

버스가 다시 10분거리를 40분 가량 돌아서 간 곳이 찜질방이다.

산청의 참숯가마 찜질방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덕천서원의 시설이 열악한 점을 감안해서 저녁에 찜질방에서 나눔을 하기 위해 장소를 선택했고,

또 후원하는 분이 있어서 건강체험의 하나로 선택했는데, 모두들 좋아하신다.

밤 10시가 되어서 덕천서원에 돌어왔다. 

그런데 아뿔사! 또 문제가 생겼다. 여름이라 이불이 많이 필요치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족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조택환 내임께 전화를 드렸다.

늦은 밤에 내임께서는 나오셔서 부족한 이불을 챙겨주신다.

감사인사를 드리고, 본격적인 휴식에 들어갔다.

다들 피곤해서 일찍 주무시라고 하고, 덕천서원 경의당에 앉았다.

환하게 붉을 밝힌 서원 뜰앞을 바라보는데,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파도처럼 일었다.

어느새 비는 개었고, 구름 사이로 달도 보인다.



아이들은 잠이 없는지 놀고 있어서, 청소년에 맞는 프로그램을 했다.

사슬플기와 인간벽화 그리기를 했는데, 의외로 잘 따라주었다.

그러다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아이들은 들어가 잠을 자는데, 이제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경의당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단소를 꺼내서 한곡조 불렀다.

옆에 있던 권혁상 선생님이 즉흥시를 지어 낭송하니

한편의 풍류세계가 펼쳐졌다.

그때부터 이야기의 주제가 풍류가 되었고,

새벽까지 이어졌다.

사진 전문가이신 하형우 선생님께서 던진 화두를 가지고

돌아가면서 각자의 세계관을 나누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니 모두들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기 위해 집합을 해서 간단하게 상읍례를 했다.



옛날에 성균관 유생들이 식사를 하러기기 전에 했다는 상호 존중의례이다.

자세는 다소 어설프기는 하지만 마음만큼은 모두가 선비가 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남명기념관에 가서 영상을 보고, 문화해설사로부터 해설을 듣고,

조종명원장님의 특강을 듣고, 거창 동계종택으로 향했다.
 
거창에 들어서니 벌써 성균관청년유도회중앙회 유상룡 부회장님께서 환영차 나오셨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계 정온선생 종택을 방문 했다.

종손이신 정완수 선생님과 할머님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할머님은 경주 최부자집 큰 따님으로 이곳으로 시집오셔서 살고 계셨다.

동생은 안동 유성룡 대감댁 종부로 가셨다고 한다.

동계선생의 집안이 전국적으로 훌륭한 분들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분의 학덕이 얼마인지 짐작이 간다.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보시더니 사탕부터 꺼내 놓으신다.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느겼다.

조금도 이상하거나 버릇없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따르는 것이다.

정완수 종손께서 가문 내력을 설명해주시고, 단체 사진을 찍고,

차량에 탑승을 해서, 유상룡 부회장님의 인사말을 간다히 듣고, 거창을 출발했다.



종부께서 준비해주신 간식으로 떡을 나누어 먹으며,

오늘날 선비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시대는 흘러 많은 변화를 가져 왔지만

사람들의 인심은 현결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선비정신이고, 선비문화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참으로 착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 사람을 존붕하고 소중하게 여겨왔던

선비들의 생활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제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서울에 도착해서 모두들 돌아가고 진행요원들 남아서 평가를 해본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작성자: 박평선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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