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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가례보감(서은경 님)

가 례 보 감(서은경 님)

 

  우리가족 3대 가계도

 

1. 친가

 

(1) 친할아버지의 성함은 서팔진이시다.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아버지께서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시다고 하시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할머니께 듣기로 추석날 저녁쯤이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굉장히 호남형이시고 인자해 보이신다.

 

(2) 친할머니의 성함은 백모순이시다. 2006년도 11월에 별세하셨고, 인자한 분이셨고, 손자 손녀를 아주 끔찍이 생각하셨다.

 

(3) 아버지의 성함은 서용학이시다. 1951년생이시고, 경남 거창에서 25녀 중 5째로 태어나셨다. 현재 개인 사업을 하시고, 무뚝뚝하시지만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극한 분이시다. 키가 크시고, 할아버지를 닮으셔서 그런지 굉장히 호남형이시다.

 

2. 외가

 

(1) 외할아버지의 성함은 이우중이시고, 55년 전에 별세하셨고, 현재 외할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머니가 5살 때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2) 외할머니의 성함은 권정심이시고, 20년 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많이 늙으셔서 항상 누워 계신 모습뿐인데, 어머니께 종종 들었던 할머니는 굉장히 똑똑하셨던 분이라고 하셨다.

 

(3) 어머니의 성함은 이소망이시다. 1952년생이시고, 전남 영암에서 24녀 중 6째로 태어나셨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단 있으시고 굉장한 미인이시다. 원래는 미용사셨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현재는 미용일을 접으시고 전업주부시다.

 

3. 형제자매

 

(1) 언니의 이름은 서하경이다. 1982년생이고, 현재는 수학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생각으론 불운한 수학 천재인 것 같다. 수능이 굉장히 어려웠을 적에 우리 언니만 수학 만점을 받았고, 정석을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로 통달했다. 현재 학원에서도 스카이대 준비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여 있는 생활을 싫어해서 임용고시는 보지 않았다. 얼굴도 예뻐서 인기가 굉장하다.

 

(2) 나의 이름은 서은경이다. 1984년생이고, 현재 일반회사에서 회사원으로 6년째 일하고 있다. 앞으로 청소년 상담사가 되기 위해 상담학부에 편입해서 상담을 공부 중이다.

 

(3) 남동생의 이름은 서보준이다. 1990년생이고, 현재는 군인이다. 언니와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유일하게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태생이다. 늦둥이에 아들 하나라 온갖 사랑은 다 받고 자랐다. 운동을 좋아했는데, 운동을 하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부상을 당해 운동을 접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내 눈엔 미남이다. 인기도 많다. 단지 성격이 내성적이라 수줍음이 많다.


우리 가족의 진품 명품

1. 가훈

 

우리 집은 원래 가훈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부모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어느 순간 가훈이 된 듯싶다. 새로 생긴 우리 집의 가훈은 어쩌면 다른 집에서 가훈으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이 똘똘 뭉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혼자 해결해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애를 중요시하고, 평소에 핏줄이란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시는 부모님의 뜻이 강해서 가훈으로 채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 좌우명

 

나의 좌우명은 절망 속에도 분명 희망의 빛줄기가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의 빛줄기를 놓치지 말자.”이다. 세상엔 참 많고 많은 사건 사고가 존재하고, 그 사건 사고 속에 내가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느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절망이라는 동굴 속으로 들어 갈 수도 있다. 이럴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희망이라는 빛줄기를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절망의 동굴 속에서 하루속히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3. 나의 근본

 

나의 본관은 경남 거창군이고, 달성서가 현감공파의 26대손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나의 먼 시조는 서 진이라는 분이신데 예전에 관직에도 몸 담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종갓집 4째 아들로 태어나셔서 어릴 적 문중 어른들께서 족보를 보면서 교육을 받았던 것이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지만, 너무 어렸던 터라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4. 저서, 예술작품 등

 

나는 예술적인 재능은 그다지 없지만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일상적인 일을 통해 얼마 전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하나 쓴 것이 있다. 내가 창작한 시와 평소에 찍었던 사진 두 장 정도를 소개하겠다.

 

(1) 자작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양면성

 

때론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때론 레몬에이드처럼 상큼하고

때론 페퍼민트처럼 상쾌한

사랑이라는 행복의 이름

 

집착이라는... 거짓말이라는...

또 다른 사랑의 이름으로

행복한 사랑을 망치고

천국에 있던 내 마음을

지옥불로 곤두박질친다.

 

그러한 아픔에도 포기할 수 없는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치명적인 유혹

달콤한 사랑도 아픈 사랑도

이내 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도 난 사랑을 한다.

 

(2) 사진 작품 활동

 

[창밖의 세상]

[]

 

인생 역전이야기

 

1. 우리 가족에게 가장 어려운 시련극복기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선하고 좋은 분들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께 보증을 서달라는 지인들이 많았고, 그로인해 우리 가족은 20여년 이상 빚을 갚으면서 살아야 했다.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시련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끼리 똘똘 뭉쳐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마인드와 행복의 추구자였던 우리 가족들에게도 커다란 시련이 왔다. 그것은 애지중지 여기는 우리 막둥이의 교통사고였다. 누구나 남자아이라면 그 또래에 한번쯤 호기심을 가질 법한 그놈의 오토바이!!! 타지 말았어야했다. 사고가 있던 날 밤 동생과 저녁을 먹고, 그날따라 심히 마음이 불안하여 어디 나가지 말고 오늘은 집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나의 말을 뒤로한 채 잠깐 편의점에 콜라 하나만 사가지고 온다던 동생이었다. 10분 뒤 우리 집의 초인종이 사정 없이 눌려졌다. “도대체 이 시간에 누가 개념 없이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거야!!!!” 하며 인터폰을 든 순간 동생 친구의 다급한 모습이 보였다. 누구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보준이 친군데요. 보준이 지금 사고 났어요 헉헉..” 100미터를 질주한 마냥 헐떡거리면서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전해주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이 부모님과 우리 자매는 버선발로 집을 뛰쳐나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119와 앰블런스와 피투성이가 되어 핸드폰 폴더가 접힌 마냥 접혀져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죽었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119대원들은 동생을 섣불리 옮기지 못했고, 이윽고 정신이 들자 동생을 병원 응급실로 옮길 수 있었다. 사고의 경위는 콜라를 사가지고 나오는 동생을 친구가 오토바이를 장만했다고 타보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뒷자리에 엉덩이를 대는 순간 무쏘 차량이 신호위반을 하여 아이들을 사정없이 들이 받은 것이었다. 다행히 주말 저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고 사고 장소가 편의점 앞이어서 진술자들이 많아서 하마터면 아이들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처럼 될법한 사건이었는데, 마무리는 잘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간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고, 태권도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동생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동생은 방황하였고 많이 힘들어하였다. 그러한 동생을 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굉장히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다독여 졌는지 군대에 입대해서 분대장도 하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러한 시련을 극복 하는 데는 정말 끊임없는 가족들 간의 소통과 믿음, 부모님의 사랑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 또한 방황하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상담 공부를 시작하였고, 부모님께서는 안으로 숨어들려고만 하는 동생에게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지지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 언니 또한 말은 안하지만 행동으로 동생에 대한 사랑을 여과 없이 표현하여 아픈 동생의 마음이 안정을 찾았고, 새로운 미래를 계획 할 수 있게 되었다.


2.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사는 것이 항상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우리 부모님이시지만 20여 년 동안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변변한 가족사진도 없다. 단 한 번의 가족 여행도 계획 할 수 없었다. 항상 소원으로 가족들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가족 여행이 1년 전에 드디어 이루어 졌다. 그날은 동생이 군대에 입대하게 되어 첫 면회를 가는 날이었다. 동생은 운전병이라 자대배치를 받기 전 운송수송학교에서 5주간 운전 교육을 받아야했고, 그 교육이 끝나는 날 12일의 면회가 허용이 되었던 것이다. 동생이 있는 운송수송학교는 강원도 홍천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로가 새로 뚫려 집에서 홍천까지의 거리는 2~3시간 남짓이고, 주변에는 군부대 밖에 없다지만 동생을 만나러 간다는 들뜬 마음과 처음으로 가족들끼리 펜션을 빌려서 1박의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우리가족은 모두 행복했다.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하는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드디어 그날이 왔다.

평소에는 아침잠이 많아 잘 일어나지 못하는 우리 언니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가족들 모두 들떠있는 기분으로 면회소로 향했던 기억이.. 그때의 그 감정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운송수송학교에 도착 후 동생의 면회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동생의 모습을 한 늠름한 청년이 한명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잘 버티어준 동생이 참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짧은 재회를 마치고 동생을 데리고 나가도 좋다는 상부의 통보를 받았다. 동생을 데리고 홍천 시내에서 가족들끼리 피자도 먹고 펜션에서 먹을 간단한 장도 보면서 우리가족은 정말 행복했다.

그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부모님께서는 이게 행복이지 뭐가 행복이겠니. 앞으로 종종 가족들끼리 이렇게 여행도 오고하자. 아버지 어머니는 소원 성취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진작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했는데, 순간 참 생각 없는 딸인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은 유독 짧은 밤이었다. 밤새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금새 날이 밝아왔고, 아쉬운 마음에 우리의 첫 번째 가족여행을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데, 펜션 사장님이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가족사진을 찍어주셨다. 유일무이한 가족사진이다. 아직도 부모님께서는 지갑 한켠에 그 가족사진을 넣고 다니신다. 나는 못 나와서 참 싫은데.....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자면 난 그 당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가족사진]

가족박물관

 

가족박물관에 내보일만한 물건들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고등학교 때 입고 다녔던 교복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어 옛 추억이 되살아나 나에게 추억을 선물해주는 교복으로 하였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취미이자 가족들이 아끼는 수석으로 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입고 다녔던 교복]

 

소망쪽지, 후손들에게 남기는 편지


1. 가족들이 남기는 소망쪽지

우리 가족의 공통 소망은 앞으로도 별 탈 없이 가족들끼리 모여서 살았으면 좋겠고, 어느 한 사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의 소망은 우리자매가 하루 빨리 좋은 사윗감을 데리고 집에 인사를 오는 것이고, 하루 빨리 새로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금쪽같은 손주 한명 낳아서 손주의 재롱을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언니의 소망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예전 학원을 잠깐 쉬고 한 달 정도 영국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영국에 반해 영국으로 유학이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소망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내가 하고 싶은 청소년 상담사가 되어서 상처 받고 힘들어 하는 음지의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하는 막내 동생의 소망은 소박하지만 제대해서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소박해 보이지만 태권도 이후로 동생이 뭔가가 하고 싶다고 말한 건 처음이라 동생의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족들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주님께 기도드린다.

 

2. 후손들에게 남기는 편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않은 나의 아이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가 네가 이 글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직 빛을 보지 않은 네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아직 너의 아빠가 누가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위해 엄마가 특별히 심사숙고해서 너의 아빠를 선택하도록 할게.^^

엄마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어떻게 생겼고 왕자님인지 공주님인지 엄마는 아직 알 수 가 없지만 어느 쪽이든 건강하게만 태어나줬음 좋겠구나.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니깐 건강한 너를 만나기 위해서 엄마가 너에게 좋은 음식도 먹여주고 좋은 음악도 듣고 예쁜 것만 보고 예쁜 말만하고 엄마도 너를 위해서 노력 할 테니, 꼭 건강하게 태어나서 엄마를 보고 활짝 웃어주렴.

그리고 엄마가 사랑하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참 많은데 뭐부터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선 엄마가 사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반면 절망적이고 힘든 일도 많더구나. 하지만 다 생각하기 나름이란다. 절망적인 세상이라도 네가 희망적이고 희망적인 꿈을 꾼다면 충분히 너는 희망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좌우명처럼 우리 아가도 절망적인 일이 있어도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의 빛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한다. 거짓된 것은 감추면 감춰는 지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있단다. 엄마는 아직도 진실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아가가 욕심이 없었으면 좋겠구나. 공부 욕심이나 네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은 너의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는 가져도 좋겠지만 금전적인 욕심은 버렸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아직도 금전적인 문제로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가족만은 우리 아가만은 그런 문제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밥 굶지 않고 생활하는데 만족 할 만큼의 금전적 욕심은 허락하나, 그 외의 것들은 우리 아가는 버렸으면 좋겠구나. 그러다 보면 네 주위에 정말 좋은 사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가득할 것이고, 또한 네가 죽을 때 까지 별 문제 없이 살만큼의 금전은 충분히 보충이 될 거라고 본단다.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진 만큼 베풀며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간에 우애롭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서로 싸우고 할퀴면서 시린 가슴을 품고 살지 말고, 서로 양보하면서 우애롭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서로 재산 싸움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형제자매들을 엄마가 사는 세상엔 참 많더구나. 그런 기사를 접하고 볼 때마다 엄마는 참 가슴이 아프더구나. 엄마는 이모와 삼촌과 없어도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서 가지고 서로 행복하게 살았는데,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모르는 것 같아서 엄마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단다. 우리 아가 만큼은 행복한 세상, 희망적인 세상, 아름다운 세상에서 꾸밈없이 밝게 이슬처럼 투명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엄마는 너를 만나는 그날까지 너에게 바라는 대로 엄마도 세상을 열심히 살게. 당연히 아주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오겠지만 엄마는 너의 그런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너를 기다릴게.^^

 

 

Posted by 박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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